처음에는 아는 사람 소개로 뭣 모르고 지금의 교회에 갔는데, 후에 알고보니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교회였다.
난 어렸을때부터 장로교에 속한 교회에 다녔고, 대학교때 예수전도단에서 활동했었고, 선교단체도 여러 경험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한이 아니라, 나름 여러가지 경험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신학을 배운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신사도 운동에 대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많은 오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내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 나 스스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니 부족한 점이 매우 많을 것임을 미리 밝혀 두겠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정이철님이 쓰신 책과, 1년 정도 다닌 교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하였다.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책은 신사도 운동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신사도 운동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 스스로 사도, 선지자임을 자처하거나, 그러한 자들을 떠받들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게 한다.
*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예언이라는 것을 전하고 따르게 한다.
* 기름 부음이라는 허무맹랑한 개념을 신봉하면서 괴상한 이적을 일으킨다.-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괴이한 소리 현상, 쓰러짐, 술 취한듯 비틀거림, 웅어거림, 강력한 전기자극을 경험하는 현상, 발광,괴성, 울음, 금이빨,금가루, 웃음, 치유현상,임파테이션
* 예수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왜곡하며, 자신들이 중보자이고, 중보기도의 은사, 중보기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한다.
*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경건사상과 왜곡된 충성과 헌신을 조장하는 '신부운동', '군대개념의 신앙 운동'등을 일으킨다.
* 거짓된 이론을 따른다- 귀신의 진지를 파악하는 영적 도해, 땅 밟기 중보기도, 하나님께 강압하는 모양새의 '선포기도', 7대산 정복운동, 부의 이동, 부의 이동의 수단이 되는 '일터교회','일터사도' 과거의 죄를 범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여 회개함으로 저주의 매듭을 푼다는 '동일시 회개'등
* 구원과 회개를 위험스럽게 설명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 극단적인 이스라엘 중심의 종말론-백투예루살렘, 이스라엘 회복 운동
1. 초자연적인 현상
책의 저자는 신사도운동의 사역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기적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해 비판한다.
이런 초자연적인 일들은 이방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고, 마귀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벌이는 짓이다라고 하면서, 진정한 이적과 기적은 복음이 증거되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고 적었다.
난 개인적으로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현상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눈 앞에서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내 눈앞에서 초자연적인 치유나 기적을 행한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들을 행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적을 행한 후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미혹하게 하거나, 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고, 자신의 유익만을 취하려고 한다면 그때가서야 이 자가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 맞을까 하며 의심하게 될 것 같다.
칼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위험한 도구다.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셨고, 제자들도 행했으며 예수님은 우리도 충분히 그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도 그것을 선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또한 이것은 매우 위험하기도 하다.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거나,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악한 것이 된다.
성령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실수 있다. 또한 마귀들도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사람들을 미혹하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린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났을때 그것이 성령님이 행하신 일인지 마귀과 행한일인지 분별해야 하는데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뒤에 어떤 결과가 있는지 봐야 한다.
신사도운동뿐만 아니라 어느곳에서든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 열매가 무엇인지 봐야한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하고, 어떤 유익을 취하기 위해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것이 보인다면 그 기적들은 거짓이다.
아직 내 눈으로 이렇다할만한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기존 교회보다 많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지고 악하게 사용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전하려 하고,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다.
신사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식으로 기적을 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자신의 유익과 영광보다는 하나님과 이웃들을 위해 선하게 사용하려는 것 같다.
은사와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추구하고 간구하는것은 나쁜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능력들을 주시기 원하시는가? 누구말처럼 성경이 대중에게 전해진 뒤로는 이런 능력과 기적은 더이상 필요가 없어서 폐하여졌는가?
만약 칼이 위험하다고 아예 사용하지 말자고 한다면 미련한 짓이다. 위험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미련하다. 칼이 위험하다고 칼을 버릴것이 아니라 칼을 능숙하게 다를수 있는 스킬을 연마해야 한다. 은사나 능력도 마찬가지 아닐까?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오시고, 누구나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으므로 하나님이 기적과 능력행함을 폐하셨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날 성령강림 이후에도 많은 신자들이 능력과 기적을 행하였다. 또한 내가 알기로 능력행함과 기적을 행하라고 하셨지 폐하셨다는 말씀은 없다.
결론. 능력행함과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구하고, 그것들을 선하게 다룰수 있도록 성품을 연마하자. 누군가 기적을 행한다면 그 기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보자. 사실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 그 자체는 쾌락과 같이 순간적이고 쉽게 사라진다. 결국에 중요한것은 결심과 그 결심을 지켜나가는 마음과 행동이다.
2.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1~12
책에서는 신사도 운동에서는 사도와 선지자에 대해서 이런 이론을 펼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성도와 신앙을 온전케 하려고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 이 다섯 가지 직분을 주셨다. 그런데 세속화된 사탄의 교회들과 교권을 틀어쥐고 횡포를 부리는 사악한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사도와 선지자들을 압살하여 사라지게 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종말의 대추수의 때가 이르러 하나님은 사도와 선지자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신앙 개혁 운동을 시작하였고, 결국 2001년부터 사도와 선지자는 다시 출현했다.
(중략)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일반 목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적 능력으로 ....
난 이 교회에 와서 오중직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교회에서 주장하는 바를 내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이해하기로는 성도들은 사도,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목사, 교사의 직임을 갖고 있고, 성도들 개인마다 자신에게 맞는 직임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직임을 찾아서 개발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는 이 직임이다라고 딱 정해진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직임에 고루 적합할 수 있지만, 특별히 자신에 맞는 직임이 있다.
책에서는 위 에베소서의 말씀 구절에서 사도와 선지자 직분이 나온 것은, 그때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필요했기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치 않게 되었으므로 또 다시 사도와 선지자가 나타날 교회사적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솔직히 사도와 선지자 직분에 대해서는 난 잘모르겠다.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종결되었다는 말도 포함해서..
그리고 책에서는 신사도운동의 사도와 선지자를 엄청 대단한 사람인양 떠받들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내 경험상 그정도는 아닌것 같다. 몇몇 사람들을 사도라고 하면서 치켜세우는 것은 있었지만, 내 느낌에는 그냥 일반 교회나 단체에서 그 단체의 대표나 리더들을 존중하고 높이는 수준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좀 더 많이 높이는 것 같은 경향은 있는 것 같긴하다.
사실 구체적인 현실적인 문제앞에서 성경만으로 답을 찾으려고 하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양심과 지식.지혜로 판단해야 한다.
내 구체적인 문제를 두고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과연 계시를 주시는가 아닌가. 하나님의 구체적인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난 오랫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사실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난 위 질문에 대한 답도 아직 못 내린 상태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이외의 개인에게 특별하게 계시를 주신다고 한다면.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믿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초자연적 기적과 치유 같은 능력을 행한다면... 난 그 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도며 선지자라고 믿고, 그의 말을 따를 것인가??
이 문제도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3. 회개
책에서는 신사도 운동에서 회개를 엄청 강조하고, 또한 그들이 전하는 회개는 율법적이고 복음적이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 반대다. 설교중에 회개에 대한 설교를 별로 듣지 못했고, 전혀 율법적이지 않다. 일반 교회보다 너무 율법적이지 않아서 우려스러울정도다.
우리 교회만 이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
4. 방언
책에서는 신사도운동에서 말하는 방언은 단지 소리현상이고 사탄의 장난이다. 또한 자신도 알 수 없는 정신없는 말을 내뱉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고 하면서, 성경적인 방언은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말함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나도 방언을 한다. 그런데 외국어 방언은 아니고, 나 조차도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는 말을 내뱉는다. 난 전부터 방언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어 방언은 좀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알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방언을 받았고, 그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계속 방언으로 기도해왔다. 그런데 사실 방언기도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걸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내가 하는 방언기도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방언이 정말 사탄의 장난일까.. 아니면 그냥 육체적 현상일까...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방언은 틀림없는 외국어였다. 초기 성도들이 배우지도 않은 외국말을 유창하게 하니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믿게 되었다.
-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외국어방언만이 방언은 아닌것 같다.
-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내가 읽기로는 이 본문에서 나오는 방언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방언인것 같은데, 책의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이 부분은 해석하기 난해하다면서 몇 가지 논리를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왜 이 본문이 외국어 방언인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본문의 방언을 외국어 방언이라고 하는것보다 알수 없는 말을 하는 방언이라고 이해하는게 문맥상 더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두 외국어 방언이 아니라 알수없는 말을 하는 방언을 한다. 아니 외국어 방언을 하는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명도 못봤다. 그럼 그들이 모두 사탄의 장난에 속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그럼 하나님은 수많은 자신의 성도들이 사탄에 미혹당하게 놔두고 있다는 말인가... 그럼 진짜는 과연 어디있는가..
나도 알수 없는 말을 하는 방언을 하면서 의심이 자꾸 들긴한다. 또한 가끔 어떤 사람이 방언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사탄의 말처럼 기분나쁘고 시끄러운 소리가 있긴하다.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방언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내 영이 하나님께 하는 기도라고 믿을란다.
5. 예언
이 책에서는 신사도 운동에서 하는 예언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하지만 내가 이 교회에 와서 가장 신선했고 좋았단 것은 예언이었다.
교회에서는 누구나 예언을 할 수 있다면서, 예언하는 법을 가르치고 실습한다.
처음에는 엄청 흥미롭고 힘도 얻고 그랬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냥 좋은 말들로 축복해주는 것이 대부분 같다. 어떤 사람을 두고 기도할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나 단어들이 있다면. 그 이미지나 단어들 가지고 좋은 말. 축복의 말 만들어 전달해주기라고나 할까...
다른 곳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우리 교회에서 보고 들은 예언은 이렇다.
우리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내 주변 사람들은 예언은 위험하다고 경고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별로 위험하지는 않다. 왜냐면 구체적인 어떤 것을 말해주기 보다는 대부분 좋은 말들만 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예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판단은 듣는 자가 하는 거라면서 예언에 많은 권위를 두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신사도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분명 신사도운동은 기존 교회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체험적이다. 그래서 기존 일반 교회에서 갈급하지만 채워지지 않았던 성도들이 많이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난 계속해서 짙은 의심속에서 믿음의 방황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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