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서란?
정서과학이란 감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정서과학에서 말하는 감정은 환경이나 내적상태에 대하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즉각적인 반응을 말한다. 정서는 감정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감정이 구체적으로 분류되는 가치적 반응을 말한다면 정서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로 '감정(emotion)' 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움직임(emotion)'에 있다. 감정은 움직임이 기초이다. 즉 감정은 행동을 위한 것이며, 감정은 행동과 상호작용한다. 행동이 감정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행동이 감정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감정이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즉각적인 반응을 말한다면, 기분은 좀 더 장기간의 상태이며 직접적인 반응을 하는 대상이 없는 확산된 상태를 말한다. 즉 전반적인 상태를 말한다. 기분은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주는데, 정서 정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의사 결정을 할 때 현재의 기분을 하나의 정보로서 이용한다.
느낌은 감정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서운 것과 무서운 느낌이 다른 것처럼 감정과 느낌은 다르게 사용된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가장 감정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감정에 의존한다.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가 위험을 피하기 위한 준비나 생식을 위한 행동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위험한 상황을 피하게 하고, 행복감이나 설레는 마음은 생식을 위한 행동을 하게 한다.
심리학자 자욘스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마주치면 인지적 평가 이전에 무조건적인 정서적인 평가를 하며, 이러한 즉각적인 정서적 평가는 의사결정이나 기억,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은 일차적 감정과 이차적 감정을 구별하여 설명한다. 일차적 감정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분명한 감정이다. 이러한 일차적 감정에는 분노, 두려움, 슬픔, 싫음, 행복, 놀라움 등이 포함된다. 이차적 감정은 일차적 감정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더 복잡하다. 후회, 죄책감, 순종, 부끄러움, 사랑, 질투와 같은 감정들이 이차적 감정에 속한다.
감정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은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가 독립적인 것을 보여준다. 긍정적인 정서는 높은 도파민 수위와 연관이 있지만, 부정적인 정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의 증가와 연관이 있다.
2. 정서 이론
- 제임스-랑게 이론- 이 이론은 신체적 반응이 감정의 경험에서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좀 더 최근의 연구들은 특정한 얼굴 표정이 감정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어드는 인위적으로 웃는 표정을 만들거나 찡그린 표정을 만드는 것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는 얼굴 표정이 감정의 결과일 뿐 아니라 감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 캐넌-바드 이론- 이 이론은 생리학적인 반응이 감정의 경험을 만든다는 제임스-랑게 이론에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율신경계의 반응에 기인하여 감정 경험을 하기에는 자율신경계의 반응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감정들이 비슷한 생리적 반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슷한 생리적 반응이 다른 감정 경험을 하게 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캐넌-바드 이론은 환경 자극이 의식적인 경험과 생리적 반응을 함께 일으켜서 감정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감정과 관련된 자극은 피질하부에서 먼저 처리되고, 피질하부는 그 정보를 대뇌피질과 신체로 따로 전달하여 의식적인 감정의 경험과 신체적 반응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즉 곰을 만나게 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반응과 무섭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진다.
- 샥터-싱거 두 요인 이론- 이 이론에서는 어떤 자극이 있을 때 그 감정에 해당하는 아주 구체적인 신체 반응이라기보다, 전반적인 생리적 각성이 일어나고 뇌가 그 생리적인 각성을 해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경험이 감정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샥터와 싱거는 두 요인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였는데, 실험참여자들에게 각성제인 아드레날린을 주입하였다. 아드레날린을 주입받은 실험참여자들은 심장박동이 빨리지고 손에서 땀이 나며 몸이 떨리는 등의 신체적 경험을 하게 되었다. 실험참여자들에게는 그 각성제의 효과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실험참여자들은 실험보조자와 같이 대기하였는데, 함께 있는 실험보조자가 즐거운 반응을 보이는 조건과 실험보조자가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이는 조건으로 나누었다. 실험 결과 즐거운 환경 내에 있는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리적 반응을 즐거운 상태로 인정하고 즐거워했으나, 화를 내는 환경에 있는 경우는 자신의 생리적 반응을 짜증스럽고 화가 나는 상태로 해석하였다. 이 연구는 같은 생리적 각성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그 해석에 따라서 전혀 다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3. 정서의 생리적 요인
감정은 자율신경계가 활성화되어 환경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시키는 과정을 포함한다. 모든 종류의 감정이 주요 생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 생리적 반응만으로는 감정을 분류하기 힘들다. 사실 감정과 관련된 자율신경계의 활동은 많은 점에서 겹치게 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은 화가 날 때나 무서울 때나 매력적인 상대에게 끌릴 때나 다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자율신경계의 여러 가지 반응의 조합과 패턴을 통해 각각의 감정이 어느 정도는 생리적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경학자 맥클레인은 감정에 관여하는 뇌의 구조는 피질하부와 대뇌피질의 경계선에 있는 여러 부위들이며, 이 부위들을 합쳐서 변연계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많은 연구들을 통해 변연계뿐 아니라 많은 대뇌피질 부위들도 감정에 관여하고, 또 변연계 모든 부위가 감정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다.
변연계에서 감정에 가장 중요한 부위는 편도체와 뇌섬이다. 편도체는 정서적 자극을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뇌의 구조 중 하나로, 자극의 중요성을 판단하여 즉각적인 감정과 행동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뇌섬은 몸 전체에서 체감각 신호를 받고 통합하게 되며, 또한 심장박동을 느끼거나 배고픔을 느끼거나 하는 신체 상태의 주관적인 인식에 관여한다. 감정은 신체 반응을 포함하기 때문에 신체 상태의 인식을 담당하는 뇌섬에 감정에 중요한 부위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뇌섬은 특히 사람들이 싫음의 감정을 경험할 때 활발하게 반응한다. 도한 뇌섬은 다른 사람이나 대상이 싫다는 감정을 표헌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싫어하는 감정을 인식할 때도 활동한다.
뇌에서 감각 정보는 두 가지 경로로 처리된다. 감각 정보는 시상에 모이게 되고, 시상에서 이들은 다음 두 가지 경로로 전달된다. 첫 번째 경로는 시상에서 편도체로 가는 경로로 빠르고 대략적인 정보 처리를 담당한다. 이 경로는 동물에게 위험을 알리고 이들이 위협에 대처하여 행동하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두 번째 경로는 시상에서 시각피질로 가는 느리지만 구체적인 정보를 포함하는 경로이다. 이 경로를 따라 시상에서 시각피질로 정보가 전달된다. 이 두 번째 경로는 시각피질에서 다시 다시 편도체로 정보를 보내고, 사람들이 감정을 만드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평가한다.
편도체는 특히 위험한 자극과 연합된 대상에 대해 공포 반응을 학습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뇌 영상 연구자들은 편도체의 활동은 공포를 보이는 얼굴 표정의 강도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편도체는 사회적인 자극의 지각에도 관여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얼굴 표정의 의미를 인식하거나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지를 판단하는 것을 담당한다. 편도체가 손상된 환자들은 얼굴 표정 사진을 보고 신뢰성을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보였다.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사람의 의사결정은 행동의 결과에 대한 감정적 판단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란 우리 경험에 근거한 신경활동의 흔적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행동이나 의사결정 등은 우리의 경험이 만들어 낸 신경활동의 흔적이 체화된 신체적 반응이다. 즉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인 판단은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 반응이 의사결정과 행동의 규제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직감이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한다. 이는 강한 느낌으로서의 판단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거나 위험한 일이 닥칠 것 같을 때의 불안한 느낌은 생리적인 반응으로 나타난다. 소름이 끼치거나 울렁거리는 느낌등은 우리의 몸이 반응하는 감정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문인의 직감은 경험의 결과를 통합한 빠른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험이 많은 의사나 간호사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보고 외상이 심하지 않아도 위흡한 상황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경험에 따른 직감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과학에서 볼 때 명시적이지 않은 빠른 판단은 많이 활성화되었던 신경회로의 흔적이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4. 정서와 의사결정
전두엽 손상 환자들은 의사결정에 가치적 판단을 주는 신체적 신호의 부재로 인하여 더 이상 적응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정서나 감정은 행동과 신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와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예후가 놀랍도록 차이가 난다는 것을 많은 의료진이 보고한 바 있다.
사람들이 지각적인 판단을 할 때나 주의 과정도 감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기분이 좋은 상태일 때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정교한 문제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더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긍정적인 정서 상태에서 넓은 사고를 하게 되고 새로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이 되거나 하는 부정적인 정서가 항상 문제해결에 나쁜 것은 아니다. 긴장될 때 주의 과정이 더 좁아지긴 하지만 더 집중을 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서 정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현재의 기분을 하나의 정보로서 이용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삶의 만족도를 물어보면 여러 가지 요인들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여러 요인들을 고려하기보다는 대답하는 순간의 기분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순간 기분이 좋으면 삶의 만족도를 높게 평가하고, 그 순간 기분이 나쁘면 삶의 만족도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결과들은 사람들이 그 순간의 기분을 지금 하는 판단과 의사결정에 의미 있는 정보로 처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5. 감정의 표현
파푸아뉴기니에서 현대 문명과 떨어져 그 안에서만 생활해 온 부족의 얼굴 표정을 연구했을 때, 그 부족민의 얼굴 표정이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문화와 인종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을 비슷한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또 다른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은 보편적이다.
니덴탈의 연구에서는 얼굴 표정이나 자세가 단순히 감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감정을 만들어 낸다고 보고한다. 예를 들어 웃는 표정을 지은 상태에서 만화를 읽으면 더 재미있다고 한다.
체화된 감정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지각하는 뇌세포 조직은 신체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뇌세포 조직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표정이나 자세 또는 몸의 움직임은 다른 사람에게 나의 현재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내 감정을 바꾸기도 한다. 당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서 협상 과정이나 의사결정에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연구도 있다.
많은 경우 일상생활에서 감정과 이성은 이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고, 감정이란 인지적으로 통제하고 극복해야 하는 내적 과정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서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적응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리를 제공하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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